그래, 그 사람은 날 알지. (테이블 오른쪽의 안락의자에 앉는다. 침착하고 서먹한 목소리로 계속한다.)
그 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어.
다른 약으론 아픈게 멎지 않거든. 손 아픈 것 말이야. (두 손을 들고 가엾다는 듯이 우울하게 본다.)
(지금은 손이 떨리지 않는다.) 가엾은 손. 넌 설마 할지 모르지만 예산ㄹ에는 이손이 얼마나 예뻤다고.
머리며 눈도 그랬지만 그리고 몸맵시도 예뻤지. (그녀는 점점 환상에 잠겨 꿈구는 듯한 어주가 된다.)
이건 음악가의 손이야.
피아노를 좋아해서 학교 다닐 때 열심히 공부 했지.
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공부는 역시 공부거든.
엘리자베스 원장님하고 음악 선생이 누구보다도 재주가 있다고 그러셨어.
아버지께서 특강료를 내주셨단다.
그저 내 말이라면 오냐오냐하셨지.
안 해주신 게 없으니까. 졸업했다면 구라파로 유학을 보내주셨을 거야.
갈 수도 있었지. 나 으리하고 연애를 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.
그렇지 않으면 수녀가 됐을지도 모르고, 나한테 두 가지 꿈이 있었지.
수녀가 된다는 것. 그건 아름다운 꿈이었지.
또 하나의 꿈의 피아니스트가 되는 거지. (말을 끊고 유심히 두 손을 본다.)